시크릿 가든 5회 Review
노마디즘.
유목주의,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철학적 형태. 라고 규정되어 있다.
거주지를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물과 목초지를 찾아다녀야 했던 그들의 삶에는,
그렇기 때문에 사유재산을 가질래야 가질 수가 없었고 그들의 자아는 곧 공동체의 공동선을 지향하는 것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었다.
인간이 노마드의 삶을 버리고 정착된 농경생활에 들어서면서 사유재산의 확보 내지는 획득을 위해 계급을 만들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대립은 그렇게 아주 고리짝 적부터 시작된 것이다.
시크릿가든에서 김주원은, 사유재산을 세습하고 그것을 정략결혼을 통하여 더욱 불려가는, 철저히 계급적 집안의 중심인물이다.
상위 1%의 1%라는 말의 구체적 의미를 그만큼 잘 보여주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다.
통장 잔고가 눈깜박일때마다 불어나서 얼만지 헤아릴 수도 없는,
아니 헤아릴 필요조차 없는,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성이란 그렇게 견고한 것이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성이란 어쩌면 이런 것일 것이다.
도무지 일반인들은 꿈꿀 수 조차 없는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써제끼는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판타지 로망이 아닐까.
그런 '판타지같은 사실' 앞에서 두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는 일 쯤이야 차라리 일어날 수 있는 '사실같은 판타지' 일 것이다.
그런데,
김주원은 계급적일까?
계급이 아니라면 적어도(어쩌면 더 무서운) 철저한 차별과 불평등은 있어야 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는 계급적일까? 정말?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이건 황인숙의 네번째 시집 제목이다.
`싱싱하고 자유롭고 열이 활활 나는 진짜 삶'을 그리워 하는 사람의 자기존재와 삶을
부정의 변증법으로 풀어놓은 것이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다. 잠깐 이 시집 안으로 들어가 보자.
시인이 거울을 본다.
거기에는 "생각도 감각도 없이/바라보는 것을 시들게 하는" `흉한 눈, 죽은 눈'이 있고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더 캄캄한 얼굴"이 있다.
그러나 거울을 보면서 시인이 절망하는 것은
"멍청하고 삐뚜름한" 자기 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어쩌겠니, 내가/ 어제 오늘 못생겨진 것도 아니고.../ 항상 이렇게 생겼었다는 것이"
오히려 위로가 되기도 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이제 본질적인 질문으로 들어가자. 김주원은 행복한가?
그의 얼굴은 미친 미모로 뭇 여성을 후리지만,
실은 그는 어둠 속에 있고, 어둠보다 더 캄캄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아플 수 밖에 없다. 닫힌 공간에서 어둠은 더욱 배가되어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자. 김주원은 왜 길라임에게 반했나?
시인을 못견디게 만드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팔 영혼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 내 영혼이라는 게 그렇게 값나가는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이다.
시인은 "내가 평생 이 빚을/ 다 갚고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억장이 무너진다.
김주원의 삐까번쩍한 삶은, 이 시인의 말처럼 실은 그렇게 값나가는 게 아닌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프다. 닫힌 공간에서 그 사실은 움직일 수 없이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아아아,니! 아니다!/ 이건 삶이 아니야"라고 시인은 "허위인 삶"에 대해 힘껏 도리질을 해본다.
그리고 시인은 `날것들'을 향해 "열이 활활 나는 삶의 손바닥으로/ 나를 후려쳐다오"하며 외친다.
그리고 "언젠가 진짜 죽음이 내게로 올 때/ 그는 내게서 조금도 신선함을 맛보지 못"할만큼
`가짜 죽음'으로 집적거려진 시인에게로
"진짜, 삶이, 온다면!/ 모든 가짜/ 죽음, 가짜 삶의 짓무른 흔적들/ 말갛게 씻기리라" 기원해 본다.
바로 그렇게 애타게 기원하고 있는 그 시점에, 김주원은 길라임을 만난다.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공포를 극복해보고자 안간힘을 쓰는 그 시점에,
누군가는 길라임을 엑스트라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녀를 스턴트라 부르겠지만
누가 뭐래도 길라임은 <액션>이다. 날것으로 살아 움직이는 삶, 노마디즘의 근원,
그것이 주원을 길라임에게 미치게 만드는 이유다.
철저히 계급적으로 <길들여>졌지만, 김주원의 유전자는 지극히 <노마드적>인 것이다.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더욱 어둡지만, 그의 피가 뜨겁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믿어보는 것이다.
오늘 나를 울컥하게 한 인어공주 씬(덧붙임 참조)에서, 대체 니 진심이 뭔지 묻는 길라임에게 그는
알잖아
알아, 라고 말한다. 그는 길라임에게 말하고 있으되 그는 그 자신에게 필사적으로 말하고 있다.
너무 잘 알아서, 가슴이 뻐근하고 절로 한숨이 나올만큼 제 마음을 너무 잘 알아서 그는 미치는 것이다.
하지만 철저히 길들여진 계급적 교육은 너무도 날카롭고 지독하고 집요해서
그에게 끊임없이 사이렌을 울리고 그 사이렌은,
혼돈에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그에게 끊임없이 현실을 환기시키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조심해, 조심해, 조심하라구, 에잇,
그렇게 없는 사람처럼 있다가 거품처럼 사라져 달라고
제발,
밥 한번 같이 먹는 거 하나 지독하게 어려운 저 여자에 대한 내 마음을,
차뚜껑을 덮어주면서까지 태워주고 싶던 저 여자에 대한 내 마음을,
쪼인트를 까이면서도 오히려 더 맞아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인 저 여자에 대한 내 마음을,
이 미친, 거지같은 마음을,
제발 거품처럼 없어지게 해 달라고
인어공주에게 통사정을 하는 것이다.
한번만 안아보자고, 내 마음 제발 거품처럼 사라지게 해 달라고,
어둡지만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이 폐소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마저 버리고 싶게 만드는 저 여자,
영원히 어둠 속에 사는게 차라리 낫지 않을까,
지금과는 다른 인생이 너무도 두려워,
그 여자에게 기어코 눈물나게 하는 이 내 마음을,
피눈물도 흘리지 못하는 이 내 마음을,
덧붙임) 실은 인어공주는 이중적 의미이다.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녀,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해 배를 난파시켜버리는 마녀이다.
이 사이렌 신화가 후에 인어공주 모티브로 사용된다.
즉 사이렌=인어공주인 것이다.
사이렌은 주원의 장원을 난파시킬 것인가? 이건 다음 기회에 리뷰로 써볼까?
- 출처 : 시크릿가든 갤러리 노을과가을님